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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부바/키키 효과: 언어와 의미의 직관적 연결

by 2보리 2024. 10.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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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부바(Bouba)와 키키(Kiki)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이 있나요?

 

이름만 들어서는 이게 뭘 의미하는지 잘 떠오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조금 재미있는 실험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여러분 앞에 두 개의 도형이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하나는 뾰족뾰족한 모양이고, 다른 하나는 둥글둥글한 모양이에요.

 

이제 이 두 도형 중 하나를 '부바', 다른 하나를 '키키'라고 부른다면, 어떤 도형이 '부바', 어떤 도형이 '키키'일까요?

 

부바는 둥글둥글, 키키는 뾰족뾰족

 

놀랍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뾰족한 도형을 '키키', 둥근 도형을 '부바'로 연관짓는다고 합니다.

 

1929년 심리학자 볼프강 쾰러(Wolfgang Köhler)가 처음 제안한 이 실험은 이후 라마찬드란(V.S. Ramachandran)과 허바드(E.S. Hubbard)에 의해 확장되며 '부바/키키 효과(Bouba/Kiki Effect)'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졌습니다.

 

1.왜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할까?

우리는 일상적으로 어떤 사물이나 현상에 이름을 붙일 때 그 이름과 대상 사이에는 특별한 연관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사과'라는 단어를 처음 듣는 외국인은 그 단어가 과일을 뜻한다는 걸 단번에 알 수 없죠.

 

이를 언어의 자의성이라고 합니다.

 

언어학자 페르디낭 드 소쉬르(Ferdinand de Saussure)는 언어의 기호인 기표(소리나 문자)와 기의(의미) 사이의 결합이 자의적이라는 이론을 제시했는데, 이는 '하얗다', 'white', 'blanc' 등 다양한 언어에서 동일한 의미를 전혀 다른 소리로 표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드러납니다.

 

그러나 부바/키키 효과는 이런 자의성의 개념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부바는 발음할 때 입을 둥글게 오므리고 부드럽게 내뱉는 소리입니다.

 

이 소리 자체가 둥글둥글한 형태를 연상시키죠.

 

반면에 키키는 발음이 빠르고 날카로워서 뾰족한 모양을 떠올리게 합니다.

 

사람들은 이러한 직관을 통해 소리와 시각적 형상을 자연스럽게 연결짓는 것입니다.

 

2.언어의 자의성, 그 이면의 직관

부바/키키 효과는 단순히 재미있는 실험으로 그치지 않고 언어의 본질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합니다.

 

언어가 무조건 자의적인 것이 아니라, 특정한 상황에서는 소리와 의미 간에 일종의 직관적 연관성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죠.

 

예를 들어, 의성어나 의태어는 부바/키키 효과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습니다.

 

'와르르', '', '반짝반짝' 같은 단어들은 소리나 모양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다른 언어에서도 비슷한 표현을 찾을 수 있습니다.

 

 

3.언어의 기원과 부바/키키 효과

부바/키키 효과는 더 나아가 인간 언어의 기원을 설명하는 데 도움을 줄 수도 있습니다.

 

뇌과학자 라마찬드란은 초기 인간이 소리와 사물의 형상을 직관적으로 연결하면서 최초의 단어들을 만들었을 가능성을 제기했습니다.

 

, 우리의 뇌는 소리와 모양 사이의 연관성을 자연스럽게 감지하고 이를 바탕으로 언어를 발전시켰을 것이라는 가설이죠.

 

4.우리가 얻을 수 있는 통찰

이 실험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중요한 통찰은 언어가 자의적이라는 기존의 전제를 완전히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인간의 뇌가 어떤 소리와 시각적 정보 사이에서 직관적인 연결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입니다.

 

물론, 이미 형성된 언어 사회에서는 이러한 직관만으로 언어가 정해지지는 않지만, 언어의 형성 과정에서 이런 직관이 일정한 역할을 했을 가능성은 열려 있습니다.

 

 

결국, 부바/키키 효과는 우리가 언어와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에 대한 새로운 차원의 이해를 제공합니다.

 

직관적으로 느끼는 소리와 모양의 연관성, 그리고 그것이 언어의 기원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에 대한 탐구는 앞으로도 흥미로운 연구 주제가 될 것입니다.

 

 

5.부바/키키 효과에 대한 추가적인 흥미로운 내용을 몇 가지 더 소개하겠습니다.

 

1) 어린아이와 부바/키키 효과

부바/키키 효과는 성인뿐만 아니라 어린아이들에게도 유사한 방식으로 나타납니다.

 

몇몇 연구에 따르면 2세 이하의 어린아이들도 이 실험에서 성인들과 비슷한 결과를 보였다고 합니다.

이는 언어적 경험이나 교육과 관계없이 인간의 뇌가 소리와 형태 사이의 연관성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을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2) 문화와 언어의 차이를 초월하는 효과

부바/키키 효과는 언어적, 문화적 차이를 초월하는 현상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영어 화자뿐만 아니라, 타밀어, 히브리어, 일본어, 스와힐리어를 사용하는 사람들 역시 동일한 패턴으로 반응합니다.

 

이를 통해 특정 언어의 구조나 문화적 배경과 상관없이 인간의 기본적인 인지 구조가 이러한 연관성을 공유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3) 시각 장애인도 부바/키키 효과를 경험할까?

흥미롭게도 시각 장애인들도 부바/키키 효과를 경험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선천적 시각 장애인들 역시 뾰족한 모양을 '키키', 둥근 모양을 '부바'로 연관시키는 경향을 보였는데, 이는 시각적 경험이 없어도 음성과 형태 간의 연관성을 인지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이는 부바/키키 효과가 시각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음성적 특성 자체가 형상과 직관적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4) 부바/키키 효과와 브랜딩

부바/키키 효과는 언어학이나 심리학뿐만 아니라 브랜딩이나 제품 디자인에서도 활용될 수 있습니다.

 

브랜드 이름을 정할 때, 음절의 모양이 브랜드가 전달하려는 이미지와 일치하도록 고려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뾰족하거나 강렬한 이미지를 전달하고 싶다면 '키키' 같은 발음을 사용하는 이름이 더 효과적일 수 있고, 부드럽고 유연한 이미지를 전달하고 싶다면 '부바' 같은 이름이 더 적합할 수 있습니다.

 

5) 소리 상징주의(Sound Symbolism)와의 연관성

부바/키키 효과는 소리 상징주의(Sound Symbolism)라는 언어학적 현상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소리 상징주의는 특정 소리가 특정한 의미나 감정과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다는 개념입니다.

 

예를 들어, 영어에서 'gl-'로 시작하는 단어들은 보통 빛과 관련된 의미를 가지는데, 'glow', 'glitter', 'gleam' 같은 단어들이 그 예입니다.

 

이처럼, 소리 자체가 의미를 담고 있을 가능성을 부바/키키 효과가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6)뇌 과학적 배경

부바/키키 효과는 단순한 심리적 실험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뇌 구조와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라마찬드란과 허바드는 이 실험을 통해 인간의 뇌가 소리와 모양 사이의 연관성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탐구했습니다.

 

특히 측두엽과 두정엽 간의 상호작용이 이러한 연관성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연구가 있습니다.

 

이 상호작용은 우리가 시각적 정보를 처리하면서 동시에 음성 정보를 연결하는 과정을 설명합니다.

 

7)신경과학적 확장

라마찬드란은 부바/키키 효과가 단순히 언어와 시각 정보 간의 상관관계를 넘어서, 인간의 신경 네트워크가 멀티센서리 정보를 통합하는 방식을 반영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효과는 청각과 시각 정보가 서로 상호작용하는 방식을 보여주며, 인간이 사물을 인지할 때 크로스모달 매핑(cross-modal mapping), 즉 여러 감각 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정보를 처리하는 것을 시사합니다.

 

8)예술과 부바/키키 효과

부바/키키 효과는 예술과 디자인에서도 중요한 통찰을 제공합니다.

 

미술 작품에서 특정 모양이나 선을 볼 때, 관람자는 그 모양이 주는 감정적 반응에 따라 다르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둥글고 부드러운 곡선이 부드러운 감정을 자아내는 반면, 날카롭고 각진 모양은 긴장감이나 불안감을 유발할 수 있죠.

 

이는 부바/키키 효과와 연결되어, 시각적 요소와 음성 또는 감정적 반응 간의 직관적 연관성을 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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