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격의 조직 원리는 융이 ‘자기’라고 부른 태고유형입니다.
전인격 또는 정신의 개념은 융 심리학의 중심적인 특색입니다. 정신에 대해 언급할 때 지적한 것처럼 이 전체성은 쪽매붙임처럼 여러 부분이 결합되어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라 성숙되는 데 시간이 걸리지만 본래 처음부터 존재하는 것이다. 태양이 태양계의 중심인 것처럼 자기는 집단 무의식 속의 중심적인 태고유형입니다. 자기는 질서, 조직, 통일의 태고유형입니다.
자기는 모든 태고유형과 콤플렉스 및 의식 속의 태고유형의 표현 형태를 자기에게 끌어들여 조화시킵니다. 자기는 인격을 통일하고 거기에 일체성과 불변성의 감각을 줍니다. 어느 누가 자신 및 세계와 조화되어 있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자기의 태고유형이 그 역할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반대로 불쾌하고 불만족스러우며 심한 갈등에 시달려 ‘산산조각이 날 것 같다’라고 느낀다면 그것은 ‘자기’의 역할이 적절하지 못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모든 인격의 궁극적인 목표는 자기임(selfhood)과 자기 실현의 상태를 달성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며 대단히 오랜 시간을 요하는 어렵고도 복잡한 과제로서 그것을 완전히 당성한 사람은 있다고 해도 극히 드물다. 예수나 석가와 같은 위대한 종교 지도자가 이 목표의 가장 가까이에 이르렀습니다.
융이 지적한 것처럼 개인의 태고유형은 거의 중년이 되기까지는 표면화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어느 정도 완전히 드러나기 위해서는 인격이 개성화를 통해 충분히 발달되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자기 실현의 상태를 달성하느냐 못하느냐 하는 것은 자아의 협력에 크게 의존하고 있습니다. 자아가 자기의 태고유형의 메시지를 무시하면 자기의 평가와 이해는 불가능할 것입니다. 어떤 것도 의식되지 않으면 인격을 개성화하는 효과를 얻을 수 없습니다.
꿈을 분석함으로써 자기 인식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참된 종교적 체험에 의해 자기를 이해하고 실현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융이 종교에 대해 말할 때 그것은 정신의 발달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지 초자연적인 현상을 가리키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융은 완전한 자기 실현을 달성하는 것보다 자기를 인식하는 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자기 인식은 자기 실현에의 길입니다. 이것은 중요한 구별인데 자기를 전혀 모르고 자기를 실현하려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인간이 인생에서 직면하는 가장 어려운 일로서 끊임없는 수련, 지속적인 노력, 최고의 책임과 지혜 등을 필요로 합니다.
무의식적인 것을 의식화함으로써 인간은 자기 자신의 본성과 보다 조화된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불안이나 욕구 불만을 느끼는 일도 적어질 것입니다. 자기 자신의 무의식 속에서 발생 요인을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무의식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무의식의 억압된 요소를 다른 사람들에게 투영합니다. 자기 자신의 결정을 자각하지 못하고 그것을 남에게 전가하여 남을 공격하고 비판합니다. 그렇게 되면 비난하고 조소하기 위한 피해자를 타인 속에서 찾을 필요가 없게 됩니다. 그의 인간관계는 개선되고 그는 타인 및 자기 자신과 더욱 조화되어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자기의 태고유형은 외적인 의식적 자아와는 전혀 다른 내적인 길잡이입니다. 자기는 인격을 조절하고 통제하며 좌우하는 힘을 갖고 있으며 인격을 성숙시켜 그 지각 능력을 높일 수 있습니다. 인간은 자기의 발달을 통해 자기 삶을 더욱 자각하고 파악하며 이해하고 지배하는 힘을 얻게 됩니다.
자기의 태고유형의 개념은 융의 집단 무의식 연구 중 가장 성과입니다. 그가 자기의 태고유형을 발견한 것은 다른 여러 가지 태고유형에 대한 철저한 연구와 저술이 모든 끝난 후의 일이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융은 “자기는 인생의 목표입니다. 자기는 우리가 개성이라고 부르고 있는 숙명적 통일체의 가장 완벽한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이라고 간추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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